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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제표만 본 산은, 정작 호황기 오자 조선업계 '발목'
출처:EBN 편집 :编辑部 발표:2022/02/14 09:47:24
긴 침체기를 견디고 다시 호황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조선업계가 인력난에 고심하고 있다.
'수주절벽'이라 불릴 정도로 혹독한 시기를 겪으면서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한 채권단은 비용절감을 이유로 지속적인 인력감축을 유도했는데 이는 결국 호황기가 찾아와도 배를 지을 사람이 부족한 결과를 초래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글로벌 조선빅3는 지난해 나란히 수주목표를 초과달성했다.
한국조선해양은 228억달러를 수주하며 수주목표(149억달러)를 53% 초과달성했으며 대우조선(108억달러, +40%), 삼성중공업(122억달러, +34%)도 100억달러 이상의 수주실적을 거뒀다.
지난 설 연휴에도 대우조선이 1조8438억원 규모의 선박 8척을, 한국조선해양이 7040억원 규모의 선박 9척을 수주하는 등 올해 들어서만 조선빅3의 수주실적은 10조원을 바라보고 있다.
이에 따라 각 조선소들도 내년까지의 일감을 일찌감치 채우며 활기가 넘치는 모습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올해부터는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을 정도의 선박이 건조되고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지난해 강재 가격이 많이 오르면서 손실이 발생했는데 내년에는 올해보다 일감이 더 늘어나는 만큼 실적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감이 늘어나면서 부족한 일손에 대한 고민도 커지고 있다.
울산에 위치한 현대중공업은 올해 하반기에 3000여명이, 거제에 위치한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은 내년부터 각각 1000여명의 인력이 더 충원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수주절벽'이라 불릴 만큼 사상 최악의 불경기를 겪으면서 조선소를 떠나는 인력도 많아졌으며 떠나간 인력들이 다시 돌아오길 바라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국내 조선소에 1만명, 협력업체에 1만명의 인력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며 "조선소를 떠난 직원들이 평택 삼성반도체 설비 공사현장으로 많이 옮겨갔는데 삼성 뿐 아니라 SK하이닉스도 설비 증설을 추진한다는 말도 있어 향후 10년 정도는 반도체 설비 관련 공사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약 10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 조선소에서 근무하는 인력은 20만명을 웃돌았으나 현재는 10만명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당시 수주가 이어졌던 해양플랜트 일감이 사라진 영향도 있으나 경기침체 장기화로 SPP조선 등 중소조선소들이 사라졌으며 살아남은 조선소들도 최소한의 인력을 유지하며 버텼기 때문이다.
조선소에 여신을 제공한 채권은행들이 자금회수를 위해 필수인력 유지마저 허용하지 않았던 것도 현재의 인력난을 부추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다수의 조선사에서 주채권은행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한 산업은행도 재무제표만 들여다보며 자금회수에 집중했을 뿐 글로벌 경기 회복으로 다시 수주가 늘어날 경우에 대비한 고민은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업계는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더 이상 비용을 줄일 방법이 없는데 산업은행에서 비용을 더 줄일 것을 요구하니 생산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까지도 희망퇴직 등을 통해 줄여야만 했다"며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은행들이 인력감축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을 뿐 비용을 더 줄이라는 통보가 사람을 내보내라는 의미라는 것은 당연했다"고 말했다.
이어 "조선소에 빌려준 돈의 조기회수에만 집착했을 뿐 경기침체를 극복한 이후의 인력 운용 등 회복기에 대비한 고민은 전혀 없었다"며 "당시 업계에서는 '산업은행이 산업을 죽이고 있다'는 비난이 팽배했다"고 덧붙였다.
조선소도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다양한 공정에서 기계가 사람의 손을 대체하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용접로봇의 성능이 아무리 개선되더라도 선체 곡선부분의 용접은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그밖에도 섬세하고 정밀한 작업을 요구하는 공정이 많아 숙련공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선박 품질을 좌우하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인력집약적인 산업인 만큼 조선업은 숙련된 작업자가 후배들과 함께 작업에 나서면서 기술과 노하우를 전달하는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재 모든 조선소에서 인력부족에 시달리고 있어 알게 모르게 서로간에 인력을 뺏고 빼앗기는 경쟁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지면서 시급 1000원 차이에도 쉽게 직장을 옮기는 사례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며 "오랜 고난 끝에 다시 호황기가 시작됐지만 조선소들은 원자재가격 뿐 아니라 임금상승 부담에도 직면하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덧붙였다.